[루키=원석연 기자] "No, no, no" 호쾌한 블록슛 이후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흔들며 상대를 농락하던 시대의 아이콘. NBA 역대 블록슛 2위(3,289개)에 빛나는 ‘전설’ 디켐베 무톰보가 모처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톰보가 참석한 자리는 바로 26일 캘리포니아주 바커 행어에서 열린 2018 NBA 시상식. 무톰보는 이날 시상식에서 ‘세이거 스트롱 어워드(Sager Strong Award)’를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52번째 생일을 맞이한 무톰보에게는 그야말로 겹경사. 그러나 단상에 오른 무톰보는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뗐다.

“내가 NBA에 첫발을 딛었을 때, 세이거와 나눴던 인터뷰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여기 서 있습니다. 이 특별한 자켓을 입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무톰보의 수상 소감을 듣던 이들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곧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무톰보가 말한 ‘특별한 자켓’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 ‘세이거 스트롱’

‘세이거 스트롱 어워드’는 지난 2016년 12월 타계한 TNT의 전설적인 사이드라인 리포터 크레익 세이거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화려한 정장을 즐겨 입었던 세이거는 국내 농구팬들에게도 꽤 친숙한 인물. 까칠하기로 소문난 포포비치와의 인터뷰 장면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1972년 플로리다주의 조그만 지역 방송국에서 라디오 뉴스 디렉터로 방송인의 삶을 시작한 크레익 세이거는 1981년 터너 네트워크에서 본격적으로 NBA 리포터로 활동한다.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우스꽝스러운 패션 센스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세이거는 NBA의 또 다른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팬들에게 코트 위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2014년 4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세이거는 그해 정규시즌을 끝으로 결국 마이크를 내려놓게 된다. 2015년 잠시 병세가 호전돼 코트에 복귀하기도 했으나 상태는 곧 다시 악화됐고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세이거는 2016년 12월 15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수들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 및 리그 관계자들은 세이거를 상징했던 화려한 정장을 입고 그를 추모했다. TNT의 방송 아나운서 어니 존슨은 추모사를 통해 오랜 친구 세이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자신의 터무니없는 자켓만큼이나 프로페셔널했던, 겉과 속이 같았던 사람.” 

‘세이거 스트롱 어워드’는 이런 세이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공로상이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업적을 남긴 NBA 전·현직 선수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일반적인 상과는 다르게 트로피가 없다. 그러나 트로피보다 더 특별한 부상이 있다. 바로 세이거가 직접 재단한 듯한 알록달록한 무늬의 화려한 자켓이다.

지난해 자켓의 주인공은 몬티 윌리엄스(현 필라델피아 코치)였다. 윌리엄스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코치로 재임 중이었던 지난 2016년 10월, 부인 잉그리드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보냈던 윌리엄스의 성숙한 모습은 NBA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주었다.
 

 

▲ 킨샤사의 성인(聖人)

역사는 짧을지라도 그 어느 상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특별한 상. 세이거 스트롱 어워드의 두번째 수상자는 디켐베 무톰보였다. 농구 선수로서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은퇴 후 삶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보다 더 빛났기 때문이다. 

8번의 올스타, 4번의 올해의 수비수 상, 3시즌 연속 블록슛 1위, 통산 블록슛 전체 2위 등 NBA에서 숱한 업적을 이루며 2015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무톰보는 현역시절 블록슛 이후 검지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며 말했다. “내 집에서는 안 돼(Not in my house).” 

무톰보가 언급한 ‘집’이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골밑을 빗댄 말로, 선수 시절 그가 따낸 무수한 훈장들이 말해주듯 무톰보는 자신의 골밑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그러나 최고의 수문장 무톰보도 정작 그의 진짜 ‘집’이었던 콩고 민주 공화국은 지켜내지 못했다. NBA에 입성한 지 꼭 6년째 되던 해, 무톰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끔찍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1997년 5월, 무톰보의 고향인 콩고의 수도 킨샤사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한창이었다. 총성이 빗발쳤고 하늘은 매일같이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킨샤사 내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 병원 '마마 예모'에서 고작 10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사무엘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내 비암바 마리가 갑작스러운 뇌졸중 증세로 쓰러진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아내를 업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전으로 인해 거리가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허무하게 눈앞에서 아내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고 디켐베 무톰보는 그렇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무톰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머니를 땅에 묻고 애틀랜타로 돌아온 무톰보는 곧바로 <디켐베 무톰보 재단>을 설립한다. 창단 초기에는 단순히 기금을 모아 아프리카의 불우한 이들을 돕는데 그치던 작은 재단이었으나 무톰보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자신의 고국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의 안타까운 현실을 널리 알리고 기금을 모으는 데 힘썼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무톰보의 블록슛과 리바운드, 연봉은 점점 줄어들었으나 그가 재단에 쏟아붓는 열정과 기금은 오히려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재단이 만들어진 지 꼭 10년째 되던 2007년 6월, 무톰보는 평생의 숙원 사업을 완수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 킨샤사에 어머니의 이름을 딴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을 개관한 것이다. 300개에 달하는 병상을 보유하고 있는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은 개관 이후 10년 동안 꾸준히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는데 힘쓴 결과 어느새 콩고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거듭났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출생 시 산모사망률은 10만 명당 693명(0.69%)에 달하며 영유아 사망률 역시 1천 명당 98명(9.8%)으로 두 부문 모두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 정도로 의료 수준이 낙후된 지역인 콩고에서 무톰보는 오늘도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의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무톰보는 이날 수상 소감을 통해 그의 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을 세우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룬 지 어느덧 11년이 지났습니다. 나의 두 번째 꿈은 우리의 도시에 고등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학교를 세울 겁니다. 과학, 기술, 수학이나 미술 같은 고등 교육을 제공해 아이들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글로벌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투박한 목소리로 전해진 그의 꿈은 전혀 투박하지 않았다. 

52번째 생일을 맞이한 무톰보는 이제 더는 ‘블록왕’이 아니다. 울긋불긋했던 근육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안경을 쓰고 다니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자켓까지 걸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에게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한다. 당신 덕분에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One man can change the world)”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디켐베 무톰보 자선활동 수상내역 일부

2018 Strong Sager Award
2017 Trumpet Humanitarian Award 
2016 NCAA Silver Anniversary Award
2015 Caring Award 
2014 Humanitarian of the Year 
2013 Congressional Humanitarian Award
2010 Miracle Corners of the World Award 
2009 NBA’s first Global Ambassador
2008 William F. Ryan Community Health Network Honors
2007 Sports Humanitarian Hall of Fame 
2000 The President’s Service Award by President Bill Clinton

 

사진 = 어니 존슨 트위터, 디켐베 무톰보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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