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스티븐 아담스는 NBA 팬들에게 조용하고 성실한 허슬 플레이어로 통한다. 지난 시즌 공격 리바운드 부문 NBA 전체 2위(경기당 5.1개)에 오른 아담스는 공수 양면에서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오클라호마시티의 보물이다.

그런 아담스가 예고 없이 한국을 깜짝 방문했다. 최근 급증한 국내 NBA 인기 덕분일까? 아담스의 방한은 농구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화제를 모았고, 결국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휴먼센터(이하 STC)에서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아담스가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그 친구가 지금 용인 수지에 산대요. 아담스는 친구도 보고 관광도 할 겸 한국에 왔는데, 마침 저희 구단 직원이 그 한국인 친구와 아는 사이였어요. 그렇게 얘기가 돼서 아담스가 저희 쪽에서 훈련을 하게 됐어요”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아담스의 STC 방문 비화다.

사실 경기가 열리는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인터뷰 중에 웃음을 터트릴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긴장해 있다. 특히 경기가 끝나고 양 팀의 승패가 완전히 갈린 뒤 진행하는 인터뷰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무겁다. 코트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 감독들과 선수들은 그들 나름대로 예민해져 있고, 기자들은 아무래도 그런 인터뷰이(interviewee)를 대하는 게 조심스럽다. 어떤 날은 굉장히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만 오가기도 한다. 경기 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자들이 감독, 선수들과 서로 유쾌하게 질문을 주고 받는 모습은 의외로 자주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스티븐 아담스는 시종일관 여유 있고 유쾌한 모습을 보이며 인터뷰 분위기를 직접 이끌었다. 아담스가 보여준 유쾌한 표정과 제스처, 여유 있는 농담은 아무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즐겁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보니 필자마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코트에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조용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과 달리, 코트 밖의 아담스는 장난기 가득하고 농담을 즐기는 선수였다.

“‘아이유 친구’라는 별명이 한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그 이름을 써서 화제가 됐습니다. 별명의 의미를 알고 있나요?”

모두가 기다린 질문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담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시작했다.

“그럼요,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아이유 사진도 본 적이 있어요. 정말 이쁜 것 같아요”

“친구가 되고 싶네요. 인스타그램 팔로우해야겠어요. 노래도 들어봤어요. 굿 데이(Good Day, 좋은 날)라고. 노래 너무 좋더라고요”

아담스를 상징하는 것이 있다. 뒤로 묶은 긴 머리와 수염이다. 당초 아담스는 머리가 짧고 수염도 없는 멀끔한(?) 모습으로 NBA에 데뷔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아담스의 머리와 수염은 길어졌고,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사실 수염을 기르는 NBA 선수는 아담스뿐만이 아니다. 많은 NBA 선수들이 수염을 기른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수염을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국내 문화와 달리, 서양에서는 수염을 남성미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NBA 선수들은 어떻겠는가. 곱상한 외모를 가진 스테픈 커리, 리키 루비오도 결국은 수염을 길렀다. 코트에서 매일 같이 상대방과 신경전을 치러야 하는 NBA 선수들에게 깔끔한 턱과 볼은 ‘본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사실 아담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담스는 뜻밖의 대답으로 취재진을 웃게 만들었다.

“머리를 기른 이유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예요. 관리를 안 해도 되고, 매번 안 잘라도 되고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담스는 18형제의 막내다. 위로 형과 누나가 무려 17명이나 있다.

특히 투포환 선수로 알려진 누나 발레리 아담스는 국내 NBA 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베이징 올림픽,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석권한 2연속 금메달리스트다. 국내 NBA 팬들 사이에서는 스티븐 아담스조차도 누나 발레리 아담스에게는 힘에서 밀릴 수도 있겠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누나가 더 힘이 센 게 아니냐는 장난 섞인 질문을 통역이 던지자 아담스는 “아니요! 당연히 제가 더 세죠!”라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동시에 아담스는 검지를 입술에 대며 누나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사실 저보다 누나가 힘이 더 세긴 해요. 벤치프레스도 저보다 더 많이 들어요” 이어진 아담스의 고백(?)이다.

한편 인터뷰 막판 드레이먼드 그린(골든스테이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담스는 통역 내용을 듣기도 전에 그린의 이름을 알아듣고 “아, 결국 시작됐네요(Oh, here we go.)”라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드레이먼드 그린은 아담스와 질긴 악연이 있는 선수다. 그린은 2016년 서부지구 결승 경기 중에 아담스의 낭심을 발로 가격해 큰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당시 사무국은 그린에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리지 않아 팬들로 하여금 의문을 자아냈다. 그린이 징계를 받고 결장했다면 시리즈 전적을 한 때 3승 1패로 크게 앞섰던 오클라호마시티가 결국 골든스테이트를 누르고 파이널에 진출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 뒤로도 이 사건은 골든스테이트와 오클라호마시티가 맞붙을 때마다 종종 회자됐다.

“그 이후에 낭심 가격에 대한 징계가 강화된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때 맞았던 건 정말 아팠습니다. 낭심 가격에 대한 징계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아요. 특별히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당시에는 진짜 아프긴 했습니다”

 

2013년 데뷔 이래 아담스는 꾸준히 오클라호마시티의 골밑을 지켜왔다. 공격에서도 아담스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는 러셀 웨스트브룩의 2대2 게임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웨스트브룩의 폭발적인 돌파는 아담스의 스크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환상의 짝꿍’ 러셀 웨스트브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담스는 곧바로 칭찬을 쏟아냈다.

“러셀은 정말 충성심이 많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친구에요. 매우 가정적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생각하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말 잘 챙겨주는 친구에요”

“웨스트브룩과 1대1은 작년에 했었는데 제가 이겼어요. 3대2로 이겼던 것 같아요”

“혹시 포스트업한 건 아니죠?”

“아니에요. 3점슛 라인 밖에서 득점한 걸요. 제가 2개를 연속으로 3점슛을 넣었어요. 하하”

NBA는 최근 빅맨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경기의 중심이 빅맨에서 가드와 포워드로 넘어가면서 빅맨의 역할이 훨씬 다양해졌다. 요즘 NBA에서는 3점슛을 던지는 빅맨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드마커스 커즌스, 조엘 엠비드 같은 빅맨들은 직접 돌파를 하고 어시스트를 하기도 한다. ‘정통 센터’라는 개념이 무색해진지 오래다. 그러나 아담스는 리바운드, 수비 등 여전히 페인트존에서의 플레이에 무게를 두는 빅맨이다. 아담스는 달라진 빅맨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코트 위의 5명이 모두 슛을 쏘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구가 포스트에 볼을 넣고 느리게 경기를 진행하는 옛날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포스트에 볼이 들어간 이후에 밖으로 다시 나오는 패스의 가치는 여전히 높다고 생각해요. 포스트에서 나오는 패스는 각도와 질이 상당히 좋거든요. 외곽에서만 볼이 도는 건 결코 좋지 않아요.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패스가 진짜 특별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아담스가 슈팅 능력이 없는 빅맨은 아니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몇 차례 공개된 훈련 영상에서 아담스는 미드레인지 점프슛은 물론이고 3점슛도 곧잘 넣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 경기 중에 아담스가 중거리슛 점프슛을 던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지난 시즌 아담스는 전체 야투 시도의 95.7%를 16피트(4.87미터) 이내 구역에서 던졌다. 본인이 가진 슛 터치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점프슛을 자제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담스는 “앞으로 3점슛을 던지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제가 3점슛을 쐈다가는 빌리 도너반 감독님이 저를 혼낼 것 같아요. 평상시에도 소리를 많이 지르는 감독님이기도 하고요”

지난 2년 동안 오클라호마시티 팬들을 유난히 분노하게 만든 이름이 있다. 2016년 여름, 골든스테이트로 이적한 케빈 듀란트다. 당시 듀란트는 오클라호마시티를 플레이오프에서 꺾은 골든스테이트에 곧바로 합류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듀란트가 이적 후 처음 오클라호마시티를 만난 경기는 당연히 많은 NBA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담스는 당시 경기를 어떻게 기억할까.

“당시 듀란트에 대해 저는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미디어가 그 경기에 굉장히 많이 주목했고 실제로 경기장에 기자들과 카메라가 정말 많이 왔어요. 플레이오프 경기 같은 분위기였죠. 저도 놀랄 정도로 미디어가 정말 많이 왔어요. 코트 안팎에서 들리는 소리가 굉장히 컸고 분위기다 더 시끄러웠어요. 팬들도 소리를 더 많이 질렀던 것 같아요”

“그때 듀란트와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제가 경기 중에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거든요. 웨스트브룩은 듀란트와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웨스트브룩은 평소에도 경기 중에 말을 많이 해요. 트래시 토크(trash talk)도 굉장히 많이 하고요”

인터뷰가 끝나자 아담스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후 아담스는 삼성 썬더스 전용 코트 주변에 머물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한 기자가 미리 준비해온 러셀 웨스트브룩의 저지를 꺼내며 셀프 카메라 촬영을 부탁하자, 크게 소리를 지르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아담스는 유쾌하고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하며 국내 취재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담스가 또 다시 한국을 방문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사진 = 원석연 기자
영상 제공 = 삼성 썬더스
영상 편집 = 이학철 기자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