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WKBL이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을 결정했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은 14일 이사회를 열고 외국인선수 출전방식 변경을 의결했다. 이사회에서는 현행 외국인선수 2명 보유, 1명 출전 방식에서 2018-2019시즌부터 1명 보유, 1명 출전으로 변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 재계약 제도도 한번 시행 후 폐지하게 됐다. 왜 이런 결정이 나왔을까?

발단은 변경된 3쿼터 시스템
외국인 선수 제도에 대한 문제는 보유 중인 2명의 선수가 함께 뛴 3쿼터 때문에 불거졌다. 

올 시즌 WKBL은 3쿼터에 외국인 선수 2명을 함께 뛰도록 했다. 

외국인 선수 2명이 함께 뛰면 많은 득점이 나오고 경기 수준이 높아진다는 기대가 있었다. 또한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이 외국인 선수의 활약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 2명이 함께 뛰는 쿼터를 더 늘리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을 치러보니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득점이 다소 올라가기는 했지만 경기 흥미를 높이는 효과나 하위권 팀들의 전력 상승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3쿼터에 외국인 선수 2명이 뛰며, 국내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3쿼터에 2명이 뛰는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 일찌감치 구단들이 의견을 통일했고 다양한 방안이 제기됐다.

국내 선수만 뛰는 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고, 현행대로 유지하되 외국인 선수의 출전 시간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보유 한도를 1명으로 줄이자는 주장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로 인해 국제 경쟁력이 올라가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의견도 대두되며 결과적으로는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한 번에 제도를 바뀔 경우 저변이 넓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농구를 하기 힘들다는 반박이 나오며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을 차츰 축소해 궁극적으로는 폐지 쪽으로 가자는 방향이 주를 이뤘다.

KDB생명 해체, 외국인 보유한도 축소의 기폭제
지난 1월 말, KDB생명의 해체가 공식화되면서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안도 1명 보유 쪽으로 급물살을 탔다. 

WKBL은 연맹 회원사가 탈퇴할 경우, 1년 치 운영비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당장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운영비를 토대로 해체된 팀을 위탁 운영하며 리그가 파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새로운 인수 구단이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회원사 탈퇴를 공식화한 KDB생명이 연간 40억 원 정도로 추산되는 운영비를 모두 납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운영비를 줄이는 것이 숙제가 됐다. 외국인 선수 1명을 줄이면 2억 원 가량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외국인 선수가 줄어들면 그 만큼 국내 선수가 뛸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됐다.

하지만 ‘재계약 불가’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외국인 선수 비중을 줄이고 국내선수의 출전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와도 관련이 없는 부분. WKBL도 보도자료에서 재계약 제도를 폐지한 이유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각 구단들은 제계약 제도 폐지의 이유로 “외국인 선수가 1명밖에 안 뛰는 데 검증된 선수를 재계약을 할 수 있게 하면 그 팀이 너무 유리해진다”는 점을 들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외국인 선수를 잘 뽑는 것도 능력이다. ‘팀 성적의 치트키’ 역할을 기대하며 선발한 외국인 선수가 너무 잘하면 잔류하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너무 잘하면 이동이 불가능한’ FA제도 만큼이나 특이한 주장이다. 

한 해설위원은 “올 시즌 외국인 선수 재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팀은 KB밖에 없다. 쉽게 말해 박지수-단타스의 더블 포스트를 견제하겠다는 데 다수의 구단이 의견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현명하다기 보다는 솔직히 치사해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재계약 제도 폐지의 문제점
(예) 외국에서 취업에 성공해 열심히 일을 했고, 해당 국가의 법에 따라 다음 재계약 때는 더 많은 금액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보장받았다. 회사에서도 흡족해하고 평가도 높았다. 그런데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자 갑자기 그 나라에서 ‘재계약은 안 된다’고 법을 바꿔버렸다. 처음 일할 때 재계약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던 계약서는 휴지 조각이 됐다. 근로자와 회사는 재계약을 원하지만 바뀐 법 때문에 방법이 없다. 나라에서는 ‘굳이 일하고 싶으면 다시 처음과 같은 금액으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근로자는 이 나라를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할까?

WKBL의 외국인 선수 재계약 폐지에 관한 부분은 이러한 예와 비슷하다. 

물론, 재계약 제도 폐지에 연맹 회원사들이 모두 뜻을 같이했다면 당연히 변경할 수 있다.

재계약의 취지는 합당한 활약을 한 선수를 해당 구단에서 오래 뛰게 하며 경기력을 높이는 것이지만, 2명을 선발하는 드래프트 제도에서 2번째 픽을 최하순위로 하는 완충규정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바로 다음 시즌이 되는 것은 문제다.

현재 WKBL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재계약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명시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25,000달러인 급여도 10% 인상이 가능하다. 올 시즌 삼성생명에서 뛴 엘리사 토마스가 그 예다. 그런데 시즌 도중 연맹 차원에서 제도를 바꾸며 그 조항을 무시하는 것이다. 

WKBL은 그동안 주요 제도 변경과 관련한 사안의 적용을 바로 다음 시즌이 아닌 1년 뒤로 시행 시점을 잡았다. 2017-18시즌에 적용된 외국인 선수 재계약도 2016년에 결정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유독 재계약 폐지는 서둘러 바로 적용에 나선다.

실제로 KB와 다미리스 단타스는 재계약과 관련해 거의 의견의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재계약 논의는 시즌이 끝난 후에 할 수 있으며, 양 측이 재계약에 뜻을 같이 하면 재계약 주체는 구단이 아닌 연맹이 된다. 그러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답변이다.

외국인 선수에게 ‘호구’인 WKBL
훈련량이 많고, 경기 수가 많다는 점, 그리고 미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부분이 단점으로 지적되지만 WKBL은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들에게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판정 기준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불만을 나타내지만 구단의 대우와 급여 수준, 그리고 한국의 생활 여건에 대해서는 만족도가 높다.

2년째 한국에서 뛰고 있는 나탈리 어천와(우리은행)는 “외국 리그에 나간다고 할 때 선수들은 농구도 중요하지만 생활 환경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고 WKBL은 매력적인 리그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한국에서 오래 뛰며 외국인이 아닌 한국 선수 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적인 위상은 높지 않다. 단순한 경기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WKBL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마다 진통을 겪는다. 드래프트를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선수가 어마어마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며 많은 감독들이 “뽑을 선수가 없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심지어 구단에 선발이 된 후에도 합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WKBL은 이들에 대해 국내리그에 뛸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징계가 아니다. 

타메라 영, 키아 스톡스 등에게 WKBL 출전 정지를 각각 5년, 3년을 결정했지만 선수 본인과 현지 에이전트에는 통보도 하지 못했다. 계약서에 서명도 하지 않은 건에 대해 법적인 효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WKBL이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고 하지만, 이는 징계가 아니라 그저 뽑지 않겠다는 담합에 불과하다. 구단들에게 해당 선수에 대한 선발금지가 내려진 것일 뿐이다.

외국인 선수를 1명으로 줄인다면 드래프트제도는 특히나 가치가 없다. 연봉 제한선을 두고 자유계약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럴 경우 선발한 선수가 합류를 거부할 때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선수와 재계약을 한 구단이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다른 구단들의 불만도 해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구단들이 반대한다. 아무리 연봉 제한선을 둔다 해도 자유계약제가 되면 뒷돈을 주며 몸값 높은 선수들을 데려오는 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더 나은 제도가 있어도 서로간의 신뢰 문제로 인해 드래프트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WKBL이다.

외국인 선수 선발과 관련해 이토록 초라한 입장에 있는 WKBL은 2년 전에는 첼시 리의 혈통 사기에 속아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을 서둘러 바꾸며 국제적으로 신뢰도와 위신을 떨어뜨리는 결정을 내렸다.

권위는 스스로 지키는 것
최근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자유계약선수(FA)제도도 마찬가지다. 

1인 최고액을 제시 받은 선수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수 없게 되어있는 부분이 분명한 문제의 소지가 있음은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뾰족한 해법이 없다며 현행 규정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속내에는 각 팀이 보유한 에이스급 선수들을 뺏기기 싫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집토끼 지키기’의 내부적 명분 속에 기형적인 FA제도의 문제점을 외면했던 일부 팀들은 박지수의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속이 타는 입장이 됐다.

이번 외국인 선수 재계약 폐지 결정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웃을 지 몰라도 나중에는 맹활약 중인 자신들의 외국인 선수를 보며 마른침만 삼키는 일이 있을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제도와 규정을 정리할 때는 자신들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 보편적이고 타당한 ‘상식적인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특히 신뢰가 생명인 대한민국 굴지의 금융 그룹들이 회원사로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불리한 부분은 합리적이지 않아도 다수의 논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일반화 된다면, 어쩌면 몇 년 후 우리는 WKBL에서 ‘우승팀은 FA 영입 불가’, ‘포지션 별 상위 순위 선수 3명이상 보유 불가’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전력평준화’ 대책을 마주할 지도 모를 일이다.

리그의 권위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하는 WKBL과 회원사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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