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14일 열린 프로농구 시상식의 주인공은 DB였다. 국내 선수 MVP(두경민), 외국인 선수 MVP(디온테 버튼), 감독상(이상범), 식스맨상(김주성), 기량발전상(김태홍)까지 무려 5개 부문을 DB가 독식했다.

2017-2018 정규시즌은 ‘DB의 반란’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정규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부분의 감독들과 선수들이 꼴찌 후보로 DB를 지목했다. 전문가 및 주요 해설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5개월 뒤 DB는 보란듯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 정규시즌을 마쳤다. 모두가 입을 모아 꼽았던 최약체가 정규시즌 우승이라니. 어쩌면 우리는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반전을 목격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DB의 선전은 더 이상 미스터리한 일이 아니다. 다만 DB가 보여준 농구의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올시즌 DB는 성적과 재미를 모두 잡은 ‘일석이조’의 팀이었다. 프로농구가 평균 관중 수 역대 최저 기록을 세우는 와중에도, DB의 경기만큼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필자는 올시즌 수도권 경기들을 직접 취재하며 DB의 인기를 직접 목격했다. 잠실 두 곳은 물론이고 인천, 안양, 고양조차도 DB가 원정을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훨씬 관중석이 많이 찼다. 올시즌 DB는 ‘재미와 승리는 양립할 수 없다’는 한국 농구의 케케묵은 명제를 완전히 깨부쉈고 붕괴 위기에 몰린 프로농구의 인기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DB가 보여준 농구 색깔은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의 리그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농구 흐름과 일치했다.

 

포스트업? 드라이브 앤 킥의 시대!

여전히 많은 국내 프로농구 팀들은 외국인 빅맨의 포스트업 공격을 첫 번째 공격 옵션으로 삼는다. 포스트업에 의해 더블 팀이 유발될 경우 공격 팀이 더블 팀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하는지, 수비 팀은 더블 팀에 대한 공격 팀의 대처를 역으로 얼마나 잘 방해하는지에 따라 경기 흐름이 좌우된다. 더블 팀이 유발되지 않으면 외국인 빅맨끼리의 1대1 매치업 혹은 포스트 구역에서 빠져나오는 죽은 볼을 국내 선수들이 마무리하는 능력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한국 농구'의 경기 양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외 리그에서 포스트업이 그 효용성을 의심받고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공격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유가 있다. 공격수가 림을 등지고 수비수를 등과 엉덩이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포스트업(post-up)은 현대 농구의 흐름에 역행하는 치명적인 약점 2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공격이 성공해도 추가 자유투를 얻지 못하는 이상 고작(?) 2점만 얻을 수 있다는 점, 둘째는 상당수의 포스트업 공격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팀 공격의 템포를 늦춰버린다는 점이다.

현대 농구의 흐름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있다. 바로 ‘페이스 앤 스페이스(Pace and Space)’다. ‘페이스’는 경기 속도를, ‘스페이스는’ 공간을 넓게 활용한 슈팅 즉 3점슛을 의미한다. 현대 농구는 갈수록 경기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코트를 넓게 활용한 3점슛 시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대 득점이 낮고 공격 템포를 느리게 만드는 포스트업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포스트업이 완전히 ‘멸종’된 것은 아니다. 해외리그에서도 여전히 많은 팀들이 두 번째, 세 번째 공격 옵션으로 아직도 포스트업을 활용한다. 신장과 힘의 우위를 활용해 득점을 노린다는 점에서 포스트업은 농구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 공격 방식이다. 아무리 외면 받고 있어도 포스트업이 농구에서 사라질 일은 절대 없다.

다만 현대농구에서 포스트업이 과거만큼 신뢰받는 공격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포스트업의 지위를 빼앗고 새롭게 각광받는 공격 방식이 있다. 바로 ‘드라이브 앤 킥(Drive and Kick)’이다.

 

갓상범이 놓은 신의 한 수

지난해 7월로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많은 감독들은 디온테 버튼이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SK의 문경은 감독은 시즌 초 라커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버튼이 외곽슛이 되는 선수인줄 다들 몰랐다. 4번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많은 구단들이 버튼을 기술이 뛰어나지만 슈팅력은 인상적이지 않은 단신 빅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범 감독조차도 버튼이 DB에 처음 합류해서 손발을 맞출 때 그를 빅맨으로 뛰게 했다고 하니, 어쩌면 확실한 가드 득점원을 원해 조쉬 셀비를 뽑은 유도훈 감독 입장에서는 ‘버거셀(버튼 거르고 셀비)’이라는 유행어(?)가 다소 억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전자랜드에는 강상재, 정효근, 김상규까지 좋은 국내 포워드들이 이미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디온테 버튼의 요청을 수용해 그의 역할을 바꿨다. 버튼을 빅맨이 아닌 가드, 정확히 말하면 ‘볼 핸들러(Ball handler)’로 뛰게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DB는 뜻하지 않게 매우 큰 변화를 맞이했다. 바로 버튼을 앞세운 ‘드라이브 앤 킥(Drive and Kick)’ 공격을 주무기로 삼게 된 것이다.

 

‘드라이브 앤 킥’은 어려운 용어가 아니다. ‘드라이브’는 돌파를 의미한다. ‘킥’은 밖으로 빼주는 킥아웃 패스다. 결국 ‘드라이브 앤 킥’이란 어떤 선수가 돌파를 해 수비를 흔든 다음 밖에 있는 동료에게 볼을 빼주는 행위, 즉 돌파 후 킥아웃 패스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이브 앤 킥’이 ‘페이스 앤 스페이스’의 시대에 많이 활용되는 이유가 있다.

일단 볼을 가지고 있는 가드가 직접 돌파를 시도하기 때문에 공격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포스트업의 경우 가드가 페인트존 근처에 잡은 빅맨에게 엔트리 패스를 투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가 이걸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 빅맨의 수비수가 마크맨보다 앞으로 나와 오버가딩을 하거나, 엔트리 패스를 시도하는 가드의 수비수가 팔과 다리를 뻗어 패스의 각을 좁히고 공격수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책을 유도한다.

그런데 ‘드라이브 앤 킥’은 다르다. 엔트리 패스라는 부담스러운 과정이 필요가 없다. 엔트리 패스를 하다가 흘러가는 시간, 엔트리 패스를 하려다 나올 수 있는 실책의 가능성을 완전히 생략한다.

대신 ‘드라이브 앤 킥’에서는 빅맨이 가드의 돌파를 살려주기 위해 밖으로 빠져 나와 스크린을 걸어주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이렇게 보면 2000년대 들어 NBA와 유럽에서 빅맨들의 슈팅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그들의 역할이 다양해진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드라이브 앤 킥’이 새로운 ‘대세’ 공격 전술로 각광받으면서 빅맨들도 그들만의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은 것이다.

버튼을 앞세운 ‘드라이브 앤 킥’을 주무기로 삼으면서 DB는 자연스럽게 ‘페이스 앤 스페이스’를 추구하는 팀으로 변모했다. 공격 속도는 눈에 띄게 올라갔고 버튼의 돌파와 킥아웃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다. 국내 선수들에게 상대 수비의 로테이션에 개의치 않는 적극적인 3점슛 시도를 주문한 이상범 감독의 판단도 적중했다. 그 결과 김태홍, 서민수가 캐치앤슛에 집중하며 공격 효율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고, 4쿼터의 ‘구원 투수’ 김주성은 클러치 타임마다 과감한 3점슛으로 스트라이크를 펑펑 꽂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사실 DB의 달라진 농구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선수는 두경민이었다. 경희대 시절부터 두경민은 슛과 스피드만큼은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직접 2대2 게임을 영리하게 전개하거나 1대1 돌파로 수비에 균열을 일으키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늘 아쉬움을 샀다. 굉장히 민첩한 움직임에 비해 볼을 가지고 시도하는 직선적인 돌파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돌파를 해내더라도 림 근처에서 마무리하는 기술이 능숙하지 못했다.

그런데 버튼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면서 두경민은 보다 편하게 자신의 농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버튼의 돌파로 오픈 기회가 나면 자신 있게 3점슛을 던졌다. 패스를 받았을 때 상대 수비가 급하게 따라왔을 경우, 수비수의 역동작을 이용해 짧게 돌파한 뒤 미드레인지 점프슛으로 마무리했다. 버튼이 1차 돌파로 무너뜨린 수비를 두경민이 2차 돌파로 다시 한 번 무너뜨린 뒤 킥아웃 패스로 다른 동료들의 슈팅 기회를 만들어주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버튼과 두경민의 시너지 효과였다.

‘드라이브 앤 킥’은 기본적으로 포스트업보다 역동적인 공격 방식이다. 볼을 받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으로 골밑까지 밀고 들어가는 포스트업과 달리, ‘드라이브 앤 킥’은 볼 핸들러의 돌파라는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이 포함돼 있다.

경기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느리고 차분한 포스트업 공격보다는 빠르고 역동적인 ‘드라이브 앤 킥’ 공격이 훨씬 재밌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DB는 ‘드라이브 앤 킥’ 이후에 나오는 아주 작은 3점슛 기회도 과감하게 살리는 농구를 했다. 완전한 오픈 찬스만 기다리다가 허무하게 24초를 보내거나 비효율적인 터프슛을 던지는 다른 팀들의 농구와는 굉장히 달랐다. 많은 농구 팬들이 DB의 농구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DB의 이번 정규시즌 우승은 단순한 ‘꼴찌의 반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DB는 수년 간 천편일률적인 농구 스타일에 갇혀 있던 프로농구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으며, 공격적인 농구와 이기는 농구가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사실 올시즌은 DB 외에도 모비스, 오리온도 상당히 색다른 농구를 보여줬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에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물론 DB가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허무하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결과를 얻든 정규시즌에 DB가 보여준 행보는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올시즌 DB의 농구는 충분히 강했으며 무엇보다 팬들을 즐겁게 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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