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승기 기자]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자랑하는 ‘트윈타워’의 한 축이 무너졌다. 드마커스 커즌스가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 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커즌스의 부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모든 기록은 2월 24일 기준)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커즌스는 데뷔 이래 늘 혹사당해 왔다

드마커스 커즌스는 언제나 가장 파괴적인 빅맨이었다. 켄터키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 2010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입단한 뒤에도 그랬다. 그는 소포모어 시절에 이미 평균 18.1점 1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 시즌을 보낼 만큼 탁월한 실력을 자랑했다. 매년 기량을 향상시킨 그는 스스로 올스타로 성장했고, 올-NBA 팀 멤버가 됐다.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새크라멘토는 만년 약체였다. 좀 해볼 만하면 내우외환이 겹치며 자멸했다. 구단은 감독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았다. 제대로 된 기회를 주기도 전에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며 책임을 따져 묻곤 했다. 그래서 감독이 수차례 교체됐고, 유망주 선수들도 계속해서 팀을 떠났다. 커즌스는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킹스는 어느덧 ‘커즌스 원맨팀’이 됐고, 커즌스가 말도 안 되게 폭발하면 이기고, 웬만하면 졌다.

그 사이 커즌스는 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빅맨이 됐다. 전력이 워낙 약한 팀 사정상, 맡은 역할이 그만큼 많았기에 강제적으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그는 외곽에서 3점슛을 던지다가도 얼른 골밑으로 뛰어 들어가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야 했고, 탑에 서서 동료들에게 패스를 찔러줘야 했으며, 포스트업으로 상대의 인사이드를 뭉개버려야 하기도 했다. 때로는 포지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수비 리바운드를 하고 직접 공을 몰고 하프코트를 넘어와 공격을 세팅하고, 득점 혹은 어시스트로 마무리하는 장면은 예사였다.

커즌스는 잔부상도 많았다. 원래 빅맨들은 부상이 많은 편인데, 커즌스도 잔병치레가 많았다. 이 때문에 해마다 10경기 정도는 기본으로 결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파울트러블에 자주 걸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커즌스는 어쩔 수 없이 출전시간을 관리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0-11시즌 데뷔 이후 새크라멘토에서 마지막으로 활약한 2016-17시즌 중반까지, 커즌스는 한 번도 평균 35분 이상을 소화한 시즌이 없었다. 부상 및 피로도 관리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았던 셈이다.

‘켄터키’ 펠리컨스의 출범

패배에 지친 커즌스는 킹스 구단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새크라멘토 역시 2018년 여름 FA가 되는 커즌스를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는 커즌스를 내보내고, 받아온 대가를 밑거름 삼아 다시 리빌딩에 착수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커즌스는 2016-17시즌 도중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트레이드 됐다.

뉴올리언스는 나쁘지 않았다. 일단 절친한 켄터키 대학 후배 앤써니 데이비스가 있어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마침 데이비스 역시 ‘원맨팀’에서의 반복되는 패배에 지쳐있던 상태였다. 두 선수가 의기투합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의 전력이 너무나도 약했기에, 커즌스가 들어갔음에도 극적인 성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앨빈 젠트리 감독 또한 당장 커즌스를 위한 전술 및 전략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커즌스와 데이비스가 ‘너 한 번, 나 한 번’ 공격하는 흐름이 반복되었고, 이는 상대의 수비 선택지를 줄여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결국 펠리컨스는 전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6-17시즌 플레이오프에 탈락했다. 이에 라존 론도와 대리우스 밀러를 연달아 영입하며 전력 보강에 나섰다. 두 선수 모두 켄터키 대학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커즌스는 이미 새크라멘토 시절 론도와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대학 선배인 론도를 믿고 잘 따랐던 경험이 있다. 물론 론도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뉴올리언스 구단은 ‘악동’이자 ‘폭군’인 커즌스를 통제하기 위해서 론도를 데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밀러도 마찬가지다. 그는 2009-10시즌에는 드마커스 커즌스와, 2011-12시즌에는 앤써니 데이비스와 켄터키 대학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배였다. 이렇게 해서 ‘켄터키 펠리컨스’가 완성됐다. 선수들끼리의 케미스트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2017-18시즌 시즌 도중 디안드레 리긴스까지 영입, 켄터키 선수가 5명이 됐다.)

펠리컨의 날개를 단 ‘폭군’

커즌스는 2016-17시즌 이미 평균 27.0점 11.0리바운드 4.6어시스트 1.4스틸 1.3블록 3점슛 1.8개(36.1%)를 기록할 만큼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그가 루디 고베어, 디안드레 조던, 드레이먼드 그린 등에 밀려 올-NBA 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어쨌든 만27세가 된 커즌스는 전성기에 접어들었고, 이제 2018년 FA 시장에 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2017-18시즌이 개막했다. 뉴올리언스는 첫 8경기에서 5패를 당하는 등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커즌스와 데이비스의 호흡이 맞아가고, 즈루 할러데이의 기량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팀 성적도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커즌스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데이비스와 함께 내외곽을 휘저으며 상대 인사이드를 초토화했다. 커즌스는 시즌 초 ‘친정 팀’ 새크라멘토를 상대로 41점 23리바운드 6어시스트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내며 뉴올리언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앤써니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결장했던 경기였기에, 커즌스의 활약이 더욱 도드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커즌스는 올시즌 내내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시즌 평균 25.2점 12.9리바운드 5.4어시스트 1.6스틸 1.6블록 3점슛 2.2개(35.4%)을 올리며 다재다능함의 끝을 보여줬다. 데이비스에게 득점 찬스를 양보하고, 본인은 한발 물러서 경기운영에 신경을 쓰는 그림도 자주 나왔다.

커즌스는 올시즌 센터로 뛰면서도 트리플-더블만 세 차례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30점-20리바운드 이상 경기를 네 차례나 기록했는데, 그중 40점-20리바운드 경기가 세 차례나 됐다. 커즌스가 올시즌 48경기만 소화했음을 떠올리면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앤써니 데이비스와 라존 론도의 존재는 커즌스에게 대단히 큰 힘이 됐다. 데이비스는 공을 오래 들고 있지 않아도 잘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공을 필요로 하는 커즌스와 얼마든지 공존이 가능했다. 노련한 베테랑 라존 론도는 데이비스와 커즌스가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공격 세팅을 잘해줬다. 커즌스 입장에서는 생애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었다.

이렇게 잘하니 뉴올리언스는 당연히 커즌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만 갔다. 앨빈 젠트리 감독은 커즌스의 출전시간을 점점 늘렸다. 11월 평균 34.7분만 뛰었던 커즌스는 12월 들어 35.4분을 소화해야 했고, 2018년 1월에는 무려 38.3분까지 평균 출전시간이 치솟았다. 가뜩이나 코트 위에서 할 일이 많았던 커즌스는 1월 말,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는 없다

커즌스는 1월 들어 야투 시도를 줄였다. 10월 평균 20.4개, 11월 평균 17.9개, 12월 평균 18.7개를 던졌던 그였지만, 1월 들어서는 첫 네 경기에서 모두 15개 이하로 슛을 하는 등 팀  플레이에 더욱 신경을 썼다. 이러한 흐름을 계속 유지하던 커즌스가 한 번 제대로 폭발한 날이 있었다. 바로 시카고 불스와의 홈경기였다. 2차 연장 접전으로 전개되는 바람에 자연스레 확실한 득점원인 커즌스가 공을 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과는 132-128, 뉴올리언스의 승리였다. 커즌스는 무려 44점 24리바운드 10어시스트라는 평생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한 말도 안 되는 트리플-더블 기록을 내며 수훈을 세웠다. 실제로 40점-20리바운드-10어시스트 트리플-더블 기록은 1968년 윌트 체임벌린(53점 32리바운드 14어시스트) 이후 무려 50년 만에 나온 대사건이기도 했다. 이는 커즌스의 기량이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였다.

그리고 나흘 뒤, 현지시간 1월 26일의 일이었다. 뉴올리언스는 ‘리그 최강’ 휴스턴 로케츠를 홈으로 불러들여 접전 끝에 115-113으로 물리쳤다. 이번에도 커즌스의 경기 막판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커즌스는 4쿼터 승부처에서 대리우스 밀러의 3점슛을 어시스트하고, 결정적인 공격 리바운드를 잡고, 바스켓 카운트를 따내는 활약을 펼치며 펠리컨스의 4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것이 올시즌 커즌스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경기 종료 8초 전, 커즌스는 갑자기 혼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커즌스는 혼자 일어설 수 없었고,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검진 결과는 왼쪽 아킬레스건 완전 파열. 그대로 시즌아웃이었다.

다재다능함이 독이 된 케이스다. 커즌스는 언젠가부터 골밑을 벗어나 외곽을 휘젓고 다니는 등 데뷔 초에 비해 확실히 활동 범위가 증가했는데, 결국 이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현대농구에서 빅맨은 더 이상 골밑에만 있으면 안 된다. 커리어를 길게 유지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곽슛 장착이 필수다. 과거와는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커즌스 또한 현대의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빅맨들의 신체에 부담을 주고 있다. 커즌스처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커즌스는 이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생애 최초로 올스타전에 선발로 출전하게 되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여름 FA 계약을 앞두고 큰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맥시멈 계약의 기회가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또, 생애 첫 플레이오프 진출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뉴올리언스는 커즌스의 이탈과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앤써니 데이비스는 “커즌스가 건강했다면 우리는 파이널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더 큰 문제는 커즌스의 선수생명이 위태로워졌다는 점이다.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은 대단히 치명적이다. 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기량이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해버린다.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안 온다고? 그렇다면 다음 자료를 보자.

[Box] 아킬레스건 부상 이전과 이후 생산력 비교
코비 브라이언트
이전 : 25.0점 5.3리바운드 4.8어시스트 1,239경기
이후 : 18.9점 4.4리바운드 3.9어시스트 107경기

패트릭 유잉
이전 : 23.3점 10.4리바운드 2.7블록 977경기
이후 : 10.1점 7.0리바운드 1.1블록 206경기

아이재아 토마스(디트로이트 레전드)
이전 : 19.2점 3.6리바운드 9.3어시스트 979경기
이후 : 만32세에 불과했지만 곧바로 은퇴

엘진 베일러
이전 : 27.5점 13.6리바운드 2.7블록 837경기
이후 : 11.8점 6.3리바운드 9경기

많은 레전드들이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기량이 폭락했을 뿐만 아니라 얼마 못가 은퇴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크리스찬 레이트너, 천시 빌럽스, 엘튼 브랜드, 브랜든 제닝스, 메멧 오쿠어, 안데르손 바레장, 웨슬리 매튜스, 루디 게이 등 수많은 선수들이 아킬레스건 파열 이후 기량을 급격하게 잃거나 곧 은퇴하고 말았다.

유일하게 예외도 있다. 도미니크 윌킨스는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도 이전과 변함없는 경기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귀한 케이스일 뿐이다. 커즌스 같은 빅맨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운동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기량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 막 전성기에 돌입한 슈퍼스타가 커리어를 위협하는 거대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미 그랜트 힐, 페니 하더웨이, 브랜든 로이, 그렉 오든, 데릭 로즈 등 앞날이 창창한 선수들을 부상으로 잃은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커즌스는 과연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 또, 돌아온다고 해도 과연 예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까. NBA 팬들은 그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진 제공 = 나이키, NBA 미디어센트럴, 드마커스 커즌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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