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정은 칼럼니스트] 경기 내내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는 선수들을 보면 경이롭다. 현역 시절 그렇게 달리는 걸 내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을 소화하며 쉼 없이 달리고, 경기 내내 자기 역할을 다 해내는 선수들을 보면 지도자 입장에서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의 ‘주간 그뤠잇’은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 모두 소위 ‘미친 듯이’ 달리는 선수들로 선정했다. 우리은행의 박혜진과 삼성생명의 엘리사 토마스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엄청난 운동량을 보여준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리고 출전 시간도 엄청나다.

흔들림 없는 뚝심의 불도저, 리그를 지배한 박혜진
vs KB스타즈(1/20) | 40:00 31점(3점슛 7/8) 8리바운드 2어시스트 야투율 76.9%(10/13)
vs KDB생명(1/22) | 38:30 16점(3점슛 2/4) 3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

MVP를 여러 번 탔고 지금은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지만 사실 박혜진은 센스나 감각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센스를 엄청난 훈련과 연습량으로 극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박혜진의 타고난 장점은 근성과 노력인 것 같다. 그리고 ‘노력하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박혜진은 불도저같다. 흔들림이 없다. 다른 선수들보다 기복이 없다. 우리은행의 다른 주축 선수들은 경기 마다 기복이 있고, 경기 중에도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차이가 있는데 박혜진은 꾸준하다. 

이런 박혜진의 꾸준함이 흐름을 바꾸고 경기를 가져온 경우가 상당하다. 우리은행을 무너뜨리려고 다른 팀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은 박혜진이 버텨내면서 팀이 흔들리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더해지자 승리를 확정짓는 경우가 많았다.

WKBL의 박지성이라고 하면 어떨까? 축구는 잘 모르지만 과거 박지성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 엄청난 체력과 활동량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박혜진 역시 그런 점이 강점이다. 체력과 활동량만 따지면 WKBL 역사에 박혜진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박혜진보다 무교체 출전이 많았던 선수나 평균 출전 시간이 많았던 선수는 있었지만 코트안에서 박혜진처럼 쉼 없이 뛰었던 선수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에 출전시간이 많았던 선수들은 뛰면서도 코트에서 스스로 조절하면서 쉬었다. 나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이어서 경기를 다 뛰고도 숨이 안찼던 적도 있었다. 괜히 민망해서 작전타임 때 호흡을 조절하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박혜진은 다르다. 

공격과 수비에 모두 관여하고 리바운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볼을 잡고 있는 시간도 많고 리딩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20일 KB전처럼 폭발적인 슈팅력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움직임 자체도 정말 폭이 넓다. 같은 시간을 뛰어도 활동량은 더 많다. 코트에서 이렇게 부지런한 선수가 또 있었을까?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강점이다. 

선수가 코트에서 스스로 조절하는 건 체력 뿐이 아니다. 상대에 따라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느슨해 질 수도 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상대하든 항상 같은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박혜진은 매 경기 보여주고 있다. 한결같다. 어쩌면 그래서 기복이 더 없는지도 모르겠다.

리그에서는 최고의 선수임이 분명하지만 1번으로 더 확실한 모습을 보이려면 상대의 존 수비를 깨는 능력을 조금 더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은행은 여전히 좋은 팀이지만 상대가 지역방어로 나설 때 경기력이 조금 흔들리는 모습이 있다. 일대일 능력이 뛰어나고 스크린을 이용한 플레이가 많은 반면 상대가 지역방어를 서면 리듬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사실 WKBL 팀들 모두가 상대의 지역방어를 제대로 깨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포인트가드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1번과 2번을 오가는 박혜진이 1번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면 지역방어를 깨는 능력을 더 키울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반대로 박혜진을 막는 상대 선수들은 박혜진을 잡기 위한 확실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박혜진은 올 시즌 우리은행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박혜진을 잡지 않고서는 우리은행을 잡을 수 없다. 박혜진이 멈추지 않으면 우리은행은 언제라도 살아날 수 있는 팀이다. 우리은행을 이기기 위해서는 박혜진을 잡아야만 한다.

박혜진이 분명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한 시즌에 7번이나 맞대결을 하는 데 만날 때마다 똑같이 당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혜진의 강점과 습관에 대해 이미 분석이 되어 있을 테니 그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연습 때 맞춤형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은혜 KBSN 해설위원이 지적한 것처럼 박혜진의 오른쪽 점프슛과 왼쪽 레이업은 공식처럼 확실한 무기다. 

박혜진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한 무리하게 수비수를 달고 슛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가는 특유의 리듬이 있다. 그때는 레이업이 아니다. 점프슛이다. 끝까지 따라가지 않아도 옆에서 슛 각도를 막을 수 있다.

왼쪽 레이업은 박혜진이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올라간다. 외국인 선수가 막아도 블록슛을 시도하는 손 위로 볼을 띄워 성공시킬 수 있는 게 박혜진이다. 어설프게 따라붙기보다 더 일찍 안쪽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상대가 이런 박혜진의 습관을 이용하면 박혜진도 역으로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조금만 집중하면 분명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박혜진은 레이업을 올라갈 때와 슛을 던질 때의 스텝이 다르다. 보는 것보다 함께 뛰면서 느끼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자주 상대한 선수들은 이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상대한 만큼 이러한 박혜진의 습관을 이용해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은행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반면, 다른 팀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것만 반복해서 시도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은행과 다른 팀들의 가장 큰 차이는 이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감독과 코치도 여러 방법을 설명하겠지만 선수 스스로도 어떻게 박혜진을 무너뜨릴지 분석하고 연습해야 한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익숙해지는 것은 다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박혜진은 단순히 한 가지 장점을 갖춘 선수가 아니다. 내외곽 득점이 모두 가능하고 패싱 능력도 갖췄다. 수가 많은 선수다 보니 수비수 입장에서 상대하기가 버겁다. 

박혜진의 다양한 능력을 제어할만한 기능을 갖춘 선수가 리그에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으로서는 김단비(신한은행)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현역 시절, 변연하(전 KB스타즈)를 막게 되면 나 혼자만의 목표를 세웠었다. ‘내 앞에서 3점슛은 주지 않겠다’라던가 ‘득점을 한 자리 수로 막겠다’같은 구체적이고 명료한 숙제를 들고 경기에 나섰다. 

박혜진과 상대하는 지금의 선수들도 팀 승리 외에 조금 더 구체적인 자신만의 목표를 갖고 경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올 시즌 삼성생명 농구의 전부, '폭주 기관차' 엘리사 토마스
vs KB스타즈(1/17) | 40:00 12점 17리바운드 7어시스트 6스틸
vs KEB하나은행(1/19) | 40:00 30점 19리바운드 9어시스트 4스틸

엘리사 토마스는 대단한 선수다. 엄청난 폭발력을 자랑하고 공만 잡으면 달린다. 올 시즌 WKBL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장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스피드와 힘,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장점이다. 부상 때문인지 정확도 때문인지는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왼손잡이인 선수가 오른손으로 자유투 슛폼을 바꾸는 걸 보면 주변의 조언에도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같다. 

토마스는 올 시즌 삼성생명 농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가 없었다면 삼성생명의 올 시즌이 어땠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좋은 활약을 펼치는 외국인 선수를 놓고 팀과의 궁합을 따지기도 한다. 이 선수가 과연 다른 팀을 갔어도 이만큼 했겠냐는 질문이다. 결과가 달랐을 것 같은 선수들도 꽤 된다.

나탈리 어천와의 경우 우리은행이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그만큼 활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KDB생명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돌아간 주얼 로이드도 빅맨이 강한 팀에 갔다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의 경우는 실패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팀에 갔어도 올 시즌 보여주고 있는 활약을 펼쳤을 것 같다. 팀과의 궁합 자체를 초월할 만큼 토마스가 대단한 선수라는 것이다.

다만 토마스의 활약과는 별개로 삼성생명은 토마스의 존재가 양날의 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토마스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고 토마스의 달리는 농구로 속공이 살아난 반면 세트 오펜스에서는 특별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토마스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기량은 정체된 느낌이다. 네 명의 선수가 토마스 한 명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모든 플레이에서 토마스 한 명만 쳐다본다. 

토마스도 국내 선수들을 살리는 플레이를 더 해줘야 한다.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숫자와는 별개다. 팀 전체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기회를 만들어줘도 동료들이 이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기가 해결하는 선택을 했겠지만, 자신에게 집중되는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과거 타미카 캐칭이 우리은행에서 했던 플레이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토마스가 특히나 위협적인 것은 달리면 한 골이기 때문이다. 

20경기에서 속공이 무려 89개다. 매 경기 10점 정도를 속공으로 넣고 있다. 토마스의 속공 숫자는 올 시즌 삼성생명과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팀의 팀 전체 속공 숫자보다도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토마스에 대한 다른 팀들의 수비도 아쉬움이 있다. 

토마스가 달리면 수비수들이 겁이 나서 그러는 지 모르지만 알아서 길을 열어준다. 스텝을 넣어서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손만 대고 만다.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파울만 늘어난다.

토마스는 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아서 플레이를 하기보다 멀리에서 달려오는 플레이가 대부분이다. 토마스의 스피드는 예리하게 빠르다기보다 묵직한 가운데 속도감이 있다. 빠르지만 날쌘 것은 아니다. 

토마스보다 신장이 작고 자세가 낮으면 림에서 멀 때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는데 장점은 전혀 살리지 못한다.

토마스가 달릴 때도 마찬가지. 상대의 스피드를 계산 안하고 옆에서 몸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니까 토마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붙어서 따라만 가다가 놓치거나 파울에 그친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길목을 막겠다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결국 힘이 좋은 선수라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몸이 닿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위축되서 정확한 수비를 못한다는 생각이다.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기량면에서 확실한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고 몸을 부딪치는데 부담이 있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제대로 된 플레이를 가져가지 못하면 발전도 없다. 

원맨 속공으로 먼저 달려 나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라면 애초부터 파울로 끊거나 어설프게 손만 갖다 대는 것 보다는 정확한 스텝을 이용해 토마스의 스피드를 죽이는 수비가 필요할 것 같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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