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올 시즌 WKBL 순위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KB가 펼치는 선두 다툼과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인 3위 자리를 놓고 나머지 팀들이 겨루는 두 개의 세계로 리그가 나눠져버렸다. 

반 게임차 2위인 KB와 3위 삼성생명의 승차는 무려 7.5게임차. 우리은행과 KB는 올스타전 휴식기 이후의 두 경기도 모두 승리하며 3위권 팀들과 더욱 차이를 벌리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다소 흔들림이 나타난다. 

외국인 선수 두 명이 뛰는 3쿼터에 절대 강자의 모습을 보였던 KB는 오히려 3쿼터에 허점을 보이며 신한은행에게 역전을 허용했다가 어렵게 승리를 거뒀다. 주축 선수 대부분이 낙마한 KDB생명과의 경기에서는 0-10으로 끌려가는 등 고전했다. 

우리은행 역시 마찬가지. 

하나은행과의 지난 달 30일 경기에서 막판까지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둔 우리은행은 1일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는 비디오까지 확인하고도 굳이 석연치 않은 선택을 한 심판 판정 덕분에 어렵게 이길 수 있었다.

여전히 3위권과의 차이를 벌리며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은행과 KB의 2강 체제는 시즌 마지막까지 굳건히 이어질까?

우리은행의 체력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우리은행이 체력에서 문제점을 보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은행이 리그 정상을 지켜온 근간에 자리 잡은 것이 체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은 조금 다른 양상이 보이고 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그동안 하루 쉰 후 열리는 경기에 대해 “오히려 경기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 정도에 힘들면 선수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하루 휴식 후 열리는 경기에 대해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다”는 말이 우리은행에서도 나오고 있다. 아직 시즌 중반임을 감안하면 분명 이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38세가 되는 맏언니 임영희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꾸준함과 지배력이 예년보다는 떨어진 게 사실이다.

게다가 양지희의 은퇴로 통합 5연패를 하는 동안 우리은행이 꾸준히 유지했던 높이의 장점이 사라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한 발 더 뛰는 움직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체력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여기에 주요 가용인원의 수도 줄었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총 9명의 선수가 평균 15분 이상을 소화했지만 올 시즌은 현재 6명이 평균 15분 이상을 뛰고 있다. 양지희와 김단비가 팀을 떠났고, 지난 시즌 주전급에서 활약을 했던 홍보람과 이은혜가 확실한 컨디션 회복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의 문제도 있다.

지난 해 우리은행은 존쿠엘 존스와 모니크 커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올 시즌 나탈리 어천와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이고는 있지만 지난 시즌 만큼 우리은행이 외국인 선수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한다.

특히 어천와는 무릎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우리은행도 “관리를 하면서 경기를 뛰고 있다. 출전 시간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샤 서덜랜드는 기량 미달로 퇴출시켰고, 대체한 데스티니 윌리엄스는 어천와보다 무릎 상태가 더 좋지 않은 모습이다. 두 명의 외국인 선수 모두 위성우 감독이 바라는 '부딪치고 싸워주는' 농구를 꾸준히 펼치기에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박혜진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작년보다 모자란 만큼 그 부담은 국내선수들이 짊어지게 된다. 특히 박혜진에 대한 의존은 상당하다.

박혜진은 현재 14.3점 5.3어시스트로 이 두 부분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고 리바운드도 평균 5.3개를 잡았다. 팀 내에서는 국내 선수 중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속공, 3점슛 성공률, 자유투 성공률 1위다. 박혜진 없는 우리은행의 농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박혜진은 18경기를 모두 뛰며 평균 38분 32초를 소화하고 있다. 출전시간 부문 단연 1위. 2위인 삼성생명의 박하나보다 평균 2분 정도를 더 뛰었다. 

지난 시즌 출전시간 1위였던 강아정(KB)도 평균 38분 37초를 뛰었고, 2012-13시즌의 한채진KDB생명)은 무려 39분 9초를 소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혜진처럼 리딩을 하며 내외곽 득점과 어시스트, 리바운드에 모두 가담하고 수비까지 핵심이 되는 역할은 없었다.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박혜진은 2012년 1월 20일 안산와동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과의 경기 이후 208경기를 빠짐없이 출장하고 있다. 위성우 감독이 부임한 2012-13시즌 이후로는 단 한 경기도 결장한 적이 없고, 이후 193경기에서 182경기를 30분 이상 뛰었다. 

올 시즌은 전 경기를 30분 이상 소화했고, 18경기 중 절반인 9경기를 단 1초도 쉬지 않고 풀타임 활약했다. 

장염에 시달리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지난 달 30일 하나은행 전과 지난 1일 신한은행 전도 연장까지 총 85분을 소화한 유일한 선수였다. 그 만큼 박혜진에 대한 대체 자원이 없는 우리은행이다.

박혜진 외에 ‘국내 빅3’로 불리는 선수들의 출전 시간도 적지 않다. 

위 감독이 시즌 전, “올 시즌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던 김정은은 최소 4주짜리 부상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두 주 만에 복귀하는 ‘즐라탄 급 회복력’을 과시하며, 17경기에서 평균 33분 38초를 뛰었고, 임영희 역시 평균 31분 1초를 뛰었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까지 매년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고 한참의 시간 동안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했다. 역대 최고 승률을 기록했던 지난 시즌에는 무려 한 달 이상의 여유를 가졌다. 위 감독의 고민은 경기력과 긴장감 유지였고 체력에는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시즌 막판까지 KB와 치열한 순위 다툼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지난 5년과는 달리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할 여유를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위 감독 스스로가 지적했듯, 부임 이래 가장 만족스럽지 않은 비시즌을 보냈다. 입버릇처럼 “선수들 몸 상태가 안 되어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말 비시즌 훈련이 충분치 않았다면 체력적인 과부하는 더욱 피할 수 없는 문제다.

KB, 박지수가 없는 시간과 외곽의 기복
‘역대급 신인’답게 프로 두 시즌 만에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박지수로 인해 KB는 반색하고 있지만 반대로 박지수가 없는 시간에 대한 답은 뾰족하지 않다. 이는 박지수가 잘 안 풀릴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

박지수는 이미 KB의 중심이다.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다미리스 단타스도 박지수가 있기에 그 위력이 배가된다. 박지수와 단타스가 인사이드를 확실하게 지배하면서 외곽까지 살아났다.

하지만 박지수에게 쉴 시간을 충분히 허락할 만한 대안을 찾지 못한 것은 여전한 숙제다. KB는 1월 중순 이후 복귀 예정인 베테랑 정미란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정미란은 각종 부상 등으로 인해 비시즌은 물론 시즌 시작 후에도 재활을 계속해왔다. 예년만큼의 활약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박지수가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 줄 것이라는 게 KB의 기대다.

이 밖에도 외곽과 2번 포지션의 안정감은 KB에게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올스타전 휴식기 이전까지 KB의 팀 3점슛 성공률은 35%에 육박했다. 6개 구단 중 단연 1위였다. 강력한 높이와 함게 KB가 시즌 초반, 리그를 독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4라운드 두 경기에서는 외곽이 전혀 터지지 않았다.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는 15개 중 2개, KDB생명과의 경기에서는 16개 중 3개만 림을 통과했다. 3점슛 성공률이 고작 16.1%였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던 김보미의 3점슛이 3경기 째 터지지 않고 있는 것도 아쉽다. 

심성영-강아정-박지수-단타스가 굳건하게 선발을 지키는 가운데 2번 자리에 고민을 갖고 있던 KB는 김보미가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상승세에 탄력을 받았다. 

김보미는 팀에서 가장 많은 3점슛을 던져 가장 많은 성공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보미가 주춤하면서 KB의 외곽도 꾸준함이 흔들리고 있다.

KB는 부상 후 재활로 팀 합류가 늦었던 김가은이 김보미, 김진영과 함께 2번 자리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김가은의 시너지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KB 역시 우리은행 만큼이나 주력 선수들에 대한 비중이 높고, 가용 인원이 많지 않다. 출전시간 10위 안에 3명의 선수가 포함된 팀은 KB가 유일하고, 단타스도 엘리사 토마스(삼성생명)에 이어 외국인 선수 중 출전시간이 두 번째로 많다. 

가용인원과 체력적인 문제에 대해 비슷한 처지의 우리은행은 그래도 리그에서 정상을 차지했던 경험과 '이기는 법'을 안다는 면에서는 KB보다 우위에 있다.

박지수가 없는 시간에 대한 해법과 2번 자리의 안정감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우리은행보다 KB가 더 어려운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어쨌든 이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 시즌 순위 싸움은 우리은행과 KB의 우승경쟁, 그리고 나머지 팀들의 플레이오프 진출 싸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마음의 위로와 다음 경기를 위한 기대감을 줄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용이 엉망이라도 일단은 이겨야 순위 싸움이 된다.

우리은행과 KB는 올스타전 휴식기 이후 치른 두 경기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내용을 보였지만 운도 따라준 가운데 어쨌든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모든 팀이 열흘 정도의 휴식을 갖고 경기를 치렀기에 지난주는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될 경우, 3위 다툼을 하는 팀들은 빠듯한 일정 속에 ‘현실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은행, KB와의 경기보다는 나머지 팀들과의 경기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팀당 남은 경기는 각각 17~18경기. 이 사이에 이미 벌어진 7.5게임차를 따라잡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상위권 팀들이 전력 구성 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뒤집기 힘든 차이다.

플레이오프 경쟁만 놓고 보자면, 이미 앞서간 두 팀보다 3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팀에게 당하는 패배가 훨씬 더 충격이 크다. 이러한 계산속에 3위권 팀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면 올 시즌의 선두 경쟁은 결국 우리은행과 KB의 대결로 고착화 될 수도 있다.

결국 남아있는 4라운드 경기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순위 경쟁의 분위기는 일찌감치 구도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