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여자농구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10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부천 KEB하나은행과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의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인 이사벨 해리슨과 나탈리 어천와가 골밑 몸싸움 과정에서 충돌했고 두 명 모두 퇴장을 당했다.

WKBL은 11일 오후 3시, 재정위원회를 개최해 이 사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당사자인 두 선수를 징계하는 것이 능사일까?

코트에서 폭력사태를 벌인 선수들에 대한 징계는 당연하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특정 경기에서 나타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보기 힘들다. 개막 때부터 꾸준히 누적된 상황이 곪아 터졌다고 봐야한다.

몸싸움 허용과 위험한 파울에 대한 기준 상실
그 동안 WKBL 룰이 FIBA와 달라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의 적응이 힘들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몸싸움에 관대한 FIBA에 비해 WKBL은 너무 민감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은 선수간의 충돌에 대한 판정이 인색하다. 부딪혀서 피가 나고, 부상을 당해 실려 나가고, 눈을 찔려 선수가 뒹구는데도 파울 콜은 나오지 않았다.

FIBA가 몸싸움에 관대한 편이라고 하지만 손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휘슬을 분다. 국제대회에 나갔던 선수들도 “몸으로 부딪치는 상황은 거의 인정하면서 손을 쓰면 파울이 나왔다. 잔손질이 많은 WKBL이랑은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올 시즌 WKBL은 그저 충돌 자체에 대해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KBL은 닿기만 해도 파울이고 WKBL은 때려도 파울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전한 농구 관계자들도 판정 기준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계 도중 해설 위원이 부상 위험 때문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발생했다. 물론 파울은 불리지 않았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느끼는 이질감은 상당하다.

국내 선수들은 올 시즌 몸싸움의 허용 범위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외국인 선수들은 "WKBL이 몸싸움이 많다고 들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상상 이상“이라고 말한다. KDB생명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돌아간 주얼 로이드는 “이러다가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도자들 역시 “기준이 없다”고 불만이다. 

몸싸움이라고 보기 힘든 충돌과 팔 사용, 심지어는 WKBL이 ‘즉시 퇴장’으로 규정한 엘보우까지 수많은 행위들이 코트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몸싸움을 용인하기 위한 적정선을 잡지 못한 탓인지 휘슬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기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공격수가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도록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파울을 불지 않는 다면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수비수만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비수를 팔로 밀쳐내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심판이 용인하는 데 얻어맞고만 다니는 선수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선수의 행동이 어긋났다기 보다 현행 제도 자체가 코트를 격앙되게 부추기고 있다.

지난 10일까지 총 38경기가 열린 가운데 경기 당 파울 수는 35.68개로 최근 5년간 가장 적었다. 하지만 테크니컬 파울수는 경기당 0.95개로 지난 시즌 대비 2배 이상이나 늘었다. 속공을 끊는 U파울에 대한 규제가 강해졌다고 해도 전체 파울 수와 테크니컬 파울 수의 부조화는 강한 이질감을 준다.

2015-16시즌 하나은행 기록 말소로 제외

해리슨과 어천와는 선수가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였고 행동에 대한 신중한 판단과 결정으로 책임을 물게 해야 한다.

하지만 거친 행위를 모두 용납해 싸움판을 조장해놓고, 싸운 선수만 징계한다면 그 또한 아이러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강력한 징계가 아니다. 올 시즌 판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 기준의 적용이 맞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슛을 던지고 내려오는 선수와 부딪치거나 착지하는 공간으로 발이 들어가는 모습의 위험성은 개막 3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제기됐다.

현장에서도 “저런 플레이가 왜 파울로 인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선수의 부상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변화는 없었다. 결국 선수가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거친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특정 선수 몇몇이 팔꿈치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불만이 나왔고 이에 대해 인정이 되지 않자 혼잡한 상황에서 팔을 휘두르는 행동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6개 구단 모두가 불만이다. 모든 팀이 “이 기준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규정을 적용하는 심판은 선수들이 충돌했을 때도 적극성을 보이지 못한다. 해리슨과 어천와의 충돌 당시 하나은행의 이환우 감독이 달려나와 선수들을 말릴 때에도 3명의 심판들은 제 3자처럼 사태를 지켜만 보고 있다. 경기를 심판하는 위치지 싸움을 심판하라고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도 아니다. 선수들의 충돌이나 감정싸움이 벌어졌을 때 동료들이 말리고 선수들을 진정시킬 때에도 심판들은 한 발 떨어져 있다. 행동에 대해 어떤 판정을 내리든 흥분한 선수들을 떨어뜨리고 정상적인 경기가 진행되도록 해야 하는 것도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렇다고 거친 플레이가 용인되는 것을 현장의 심판이 운영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시즌 내내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현장에서 심판이 규정을 잘못 적용했다기 보다 전체적인 운영 기준을 이렇게 제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 시즌 판정 기준에 대해 구단들은 이미 여러 차례 위험성을 경고하고 불만을 제기했다. WKBL 심판부가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과 그 기준의 적법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징계에 대한 투명성 I
사태 본질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벌어진 사건에 대한 징계에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WKBL의 징계나 사후 조치에 대해서도 각 구단의 불신은 상당하다. 

우선은 심판설명회가 그렇다. 잘못된 판정에 대해 구단이 연맹에 항의를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심판설명회의 개최다. 그런데 이 심판설명회에 대한 각 구단들의 불만은 상상이상이다. 올 시즌 만의 일이 아니다. 몇 년째 누적된 불만이자 불신이다.

“영상으로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보는 각도’를 운운하며 오심이 아니라고 한다. 15개가 넘는 상황을 갖고 항의를 해도 절대로 5개 이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심 수가 특정 개수를 초과하면 해당 심판이 징계를 받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도 앞으로 저렇게 하면 되냐’고 반문하면 흥분하지 말라고 한다.”

“시즌 전에 줬던 판정 가이드라인과 너무 달라서 그때 준 영상이랑 비교를 하며 확인을 하자고 했더니 ‘그걸 왜 지금 보자고 하냐’고 면박을 주더라.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것인가?”

지난 몇 년간 심판설명회에 들어갔던 각 구단들의 불만이다.

3년 전 심판설명회를 마치고 나왔던 한 감독은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던 해당 감독은 “30년 이상 농구를 했는데, 내가 규칙도 잘 모르면서 감독을 했나보다. 선수들한테 내가 죄인”이라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구단들이 심판설명회를 요청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보이는 상황에 대해 자신들의 기준이 맞는지 확인하고, 심판들이 유사 상황에 대해 더 적절한 대처를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심판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구단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설명회에서 억울한 부분을 말해봤자 전혀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다음 경기에서 자신들이 유사한 동작을 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휘슬을 분다는 것. 한 감독은 “굳이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 콜을 주더라. ‘네가 바라는 게 이거였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판설명회에서 오심이 인정된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구단들은 오히려 ‘판정 보복을 당하는 심판설명회를 개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엄청난 불신이다.

물론 WKBL의 입장은 다르다. 구단들의 이러한 반응에 난감하다는 것. 문제가 있고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설명회를 통해 바로잡는 것이 맞다고 한다. 오해가 있는 부분도 이런 과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 중 파울을 인정받은 선수는 없다.

징계에 관한 투명성 II
징계 심의와 관련한 내용이 철저히 비공개인 것도 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소다. 

각 구단들이 요청한 심판 설명회 결과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설명회와 관련한 정보를 취득한 기자가 먼저 묻지 않는 한 개최 여부조차 알 수 없다. 결과는 더욱 비밀이다. 

'어떤 구단이 몇 개의 판정에 불만을 제기했고. 그 중 몇 개를 인정했으며, 그에 따라 어떤 조치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구단에도 해당 내용을 언론에 밝히지 말라고 협조를 구한다.

큼직한 사안들의 징계를 결정하는 재정위원회도 마찬가지. 재정위원회에서 어떤 징계를 결정했는지는 재정위원들과 징계당사자간의 비밀처럼 보인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

김보미(KB스타즈)를 발로 가격했던 신한은행 김아름, 벤치 테크니컬 파울 2회로 퇴장을 당했던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 등이 올 시즌 재정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벌금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상황을 인정하여 얼마의 벌금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재정위원회에서 결정해 해당자에게 직접 우편으로 통지하기 때문에 이 외의 사람들은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재정위원회까지 가지 않은 부분도 상당수 존재한다. 오심이나 지난 11월 8일, 한 팀에 두 번 연속으로 공격 기회를 준 판정과 관련해 기록을 다르게 정리했던 사안과 같은 부분들은 재정위원회를 열지 않고 자체 징계를 결정했다. 

‘해당 인원에 대해 배정 정지가 결정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구단들은 이러한 사안과 관련한 징계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재정위원회의 결정에도 구단들은 큰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해에는 퇴장당한 감독에게 징계를 하면서 ‘영상을 확인한 결과 현장의 판단이 타당했다’는 결과를 당사자에게 전했다. 그러나 ‘감독이 선을 넘어 항의를 했다’는 주장에 근거가 될 영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재정위원회에서 사안을 심의해도 결론적으로는 ‘제 식구 감싸기’의 거수기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실질적인 체감온도다.

경기장에서 나와서는 안될 행동을 보인 선수들에게 징계를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같은 일이 왜 벌어졌는지를 확인하고 근본적인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환경적 요소에 대한 개선, 그리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가기 위한 장치에 대한 대책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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