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상혁 기자] 일본여자농구가 아시아 최강에 오르게 된 이유는 선수들의 노력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일본농구협회(JBA)의 탄탄한 지원과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여자대표팀이 중국과 한국에 매번 패하고 무너져 성적이 바닥을 칠 때도 JBA는 대표팀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해마다 한 번씩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 세계 농구를 접하게 했고 해외팀을 초청해 평가전을 열어 일반 팬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대표선수라는 자긍심을 갖게 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들 사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는 180도 다른 행보였다. 선수들이 일본을 이기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에 따른 충분한 지원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올 시즌 양국 대표팀의 준비 과정과 협회의 지원 현황만 비교해도 그 차이는 극명하다.

감독 계약 기간 4년 vs 2개월, 장기적인 플랜은 언감생심

JBA는 지난해까지 여자대표팀을 이끌던 우츠미 도모히데 감독과의 계약을 끝내고 새롭게 톰 호바스 감독 체제로 팀을 개편했다. JBA 기술위원회가 리우 올림픽 8강까지 이룬 우츠미 감독과 계약을 이어가지 않고 새롭게 호바스 감독과 계약을 맺은 것은 2020년 도쿄 올림픽 때문이다. JBA는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물이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적임자로 호바스 감독을 선정한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약 4년간 대표팀을 맡게 된 호바스 감독은 리우 올림픽 코치로 지냈던 경험을 토대로 일본 대표팀의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도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 설정 후 그가 주목한 것은 스몰포워드 포지션의 강화였다. 그는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으로 스몰포워드 포지션의 약세를 꼽았다. 그리고 이 포지션의 선수들이 성장하면 기존의 요시다 아사미와 도카시키 라무 등과 함께 일본 대표팀의 성적 향상에 큰 기폭제가 되고 도쿄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에도 가까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기 위해서는 3번 포지션에서 득점은 물론이고 몸싸움과 수비, 리바운드에서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호바스 감독의 생각. 이에 따라 외곽슛은 좋으나 신장이 작고 몸싸움 능력이 떨어지는 구리하라 미카(172cm)나 모토카와 사나에(176cm) 대신 새롭게 선발된 것이 미야자와 유키(182cm, 24), 나가오카 모에코(182cm, 23), 마우리 에브린(180cm, 22) 등 3명이다. 그리고 호바스 감독은 이 세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5차례의 국내 훈련과 2차례의 해외 전훈 기간 동안 이 세 선수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스페인과 미국의 선수들과 직접 맞부딪치며 세계 무대 적응에 나선 이들은 7월 인도 벵갈루루에서 열린 FIBA 아시아컵 대회에서 도카시키 라무의 공백을 메우며 3년 연속 아시아 우승을 이끄는 데 일조했다.

나가오카 모에코는 이 대회에서 경기당 13.7점을 올리며 득점부문 전체 5위. 일본 팀 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미야자와 유키 역시 경기당 평균 10.3득점을 올리며 나가오카의 뒤를 받쳤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마우리 에브린 역시 필리핀 전에서 21점을 몰아넣는 등 경기당 5.3점 0.7리바운드를 올리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임 감독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표 선수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호바스 감독처럼 4년은커녕 공모제를 통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서동철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개월이었다. 호바스 감독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차분하게 대표팀에 취약 포지션을 살피고 그 부분의 강화를 위한 고민을 할 시간조차 없다. 아니 눈앞의 대회를 치를 준비를 하는 데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한국 여자대표팀도 이미 세대교체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어떤 포지션에 어떤 선수를 키워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니 그 고민의 주체가 될 협회가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면 능력 있는 전임감독이 책임감을 갖고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새롭게 팀을 만들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 시간조차 주지 못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농구협회의 현실이다.

연습 상대, ‘韓 국내 고교팀이 전부, 日 스페인 대표팀과 NCAA 우승팀

일본 여자대표팀은 4월 6일 처음 소집돼 7월 18일까지 약 5차례의 국내 훈련과 2차례의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일본은 성인 대표팀은 물론이고 19세 이하 등 청소년 대표팀 역시 적어도 한 차례는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한다. 국제 대회에 나가는 만큼 세계의 다른 나라 선수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쳐 세계무대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일본여자대표팀은 FIBA 아시아컵을 앞두고 미국과 스페인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미국에서는 NCAA 우승팀인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3차례 연습경기를 갖고 3연승을 거두며 자신감을 갖기도 했고, 유럽 전훈에서는 스페인,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대표팀 등과 경기를 통해 세계의 장신 선수들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국내로 복귀한 뒤에는 네덜란드를 초청해 2차례의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또 일본의 모든 대표팀들이 소집돼 훈련을 하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 센터는 도쿄에 있는 농구 전용 체육관이다. 농구 코트 3면과 전력분석실, 훈련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 등이 있는 일본 최고의 시설이다. JBA의 일정 조절로 각급 대표팀이 같은 기간에 훈련한 적은 없으나 만약 몰리게 되더라도 3개팀이 한꺼번에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코트가 없어서 대표팀이 다른 곳에 쫓기듯 가는 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에 비하면 한국의 준비 과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총 7주의 기간 동안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훈련을 진행했는데 그나마도 1주는 코트가 한 개밖에 없고 남자팀과 비슷한 기간에 훈련을 진행한 까닭에 상주에서 훈련을 이어가야 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팀 선수들이 마음 놓고 훈련할 곳이 없어 쫓기듯 지방으로 간 것이다.

연습경기도 마찬가지다. 해외 원정을 가거나 해외팀을 초청해 평가전을 갖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마치 관례인양 국내 남자 아마추어팀을 불러 연습경기를 하는 게 전부였다. 아마 대표팀이 이렇듯 국내 아마추어팀하고만 연습경기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고교선수들이 여자대표선수와 비교해 스피드가 빠르고 힘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다른 국가대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고교선수들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호주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표팀의 연습 경기도 협회가 의지만 있었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비슷한 기간에 한국에 전훈차 입국한 WJBL 구단과 연습 경기를 조율한다거나 WKBL 선수들로 연합팀을 구성해 맞춤형 스파링 파트너팀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일본은 호바스 감독이 요청을 하면 JBA의 기술위원회 및 해외 파트에서 연습 경기 상대를 조율하고 해외 원정을 준비한다. 하지만 한국은 대표팀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협회가 ‘안 된다’, ‘어렵다’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여자대표팀 관리를 너무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사진 = 박상혁 기자, 대한민국 농구협회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