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앞선 기사들을 통해 한일간 여자농구의 차이를 비교해봤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일본에 뒤쳐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청소년 대표간의 대결. 비교할 수 없는 저변의 차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일본 WJBL과 WKBL의 수준 차. 이 모든 것들은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우려를 더 깊게 한다.

완승을 거두지 못하면 ‘졸전’이라는 평가를 받던 일본과의 성인 대표팀 맞대결에서 이제는 10점차 이상으로 패해도 ‘대패’ 혹은 ‘수모’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점수 차의 패배에도 ‘선전’이라는 말을 쓰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스피드와 지구력, 체력과 운동량, 지구력 등 일본과 우리나라의 강점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체되고 퇴보하는 사이 일본은 강점을 더욱 끌어 올리는 데 집중했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중국 WCBA의 랴오닝 성을 지도하고 있는 김태일 감독은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강이 되기 위해 중국을 잡고자 했을 때도 중국은 우리를 라이벌로 보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의 아시아 경쟁상대는 일본 뿐이다. 이제 일본도 우리를 중국과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두터운 선수층, 미래가 아닌 현재임을 증명한 일본
당초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아시아컵’을 앞두고 일본이 대표 12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 여자농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도카시키 라무(JX/시애틀)를 비롯해 미요시 나호, 쿠리하라 미카(이상 도요타), 모토카와 사나에(샹송)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했던 선수들이 대거 제외됐다. 도카시키의 경우 미국 WNBA를 뛰고 있기 때문이라 해도 나머지 선수들은 의외였다. 

쿠리하라가 지난 시즌 다소 부진했던 반면 모토카와는 지난 해 WJBL 정규리그에서도 평균 15.6점 5.8리바운드 4.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가드인 미요시는 15.7점 3.7리바운드 3.7어시스트와 함께 3점 성공률 44%의 기록을 남기며 FA자격을 획득해 소속팀을 옮겼다.

국내 전문가들은 호주가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이 아닌 월드컵 진출로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최정예를 대표로 선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멤버로 우승을 차지했다.

쓰쿠바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해 WJBL 챔피언 JX-에네오스에 입단해 경기당 15분 남짓 활약했던 소속팀의 백업가드 후지오카 마나미는 처음 뽑힌 성인 대표 무대에서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선배 요시다 아사미를 대신해 그 이상의 플레이를 펼쳤다. 

대회 평균 기록은 11.3점 5.2리바운드 8.2어시스트. 중국과의 4강전에서는 19점 8리바운드 14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에 준하는 기록을 작성했다. 대회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오히려 이번 대회를 통해 일본은 오가 유코(35세, 도요타)-요시다 아사미(28세, JX)-후지오카 마나미(23세, JX)로 이어지는 대표팀 포인트 가드 계보를 완성했다. 미요시 나호(24세, 도요타), 마치다 루이(24세, 후지쯔) 등 백업진도 든든하다.

성인 대표팀은 물론 대표팀 경력 자체가 없는 미즈시마 사키(도요타)는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호주를 무너뜨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미즈시마는 호주와의 결승에서 약 24분간 활약하며 26점을 폭발시켰다. 3점슛은 9개를 던져 무려 7개를 꽂아 넣었다. 모든 득점은 후반에 집중됐다. 일본이 후반에 기록한 득점은 41점. 결승전 승부처였던 마지막 20분동안 미즈시마는 팀 득점의 63%를 혼자 책임졌다.

일본과 호주가 71-71로 맞서던 종료 1분 30초 전, 마치다 루이의 패스를 받은 미즈시마가 오사키 유카의 스크린을 받아 탑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며 빠르게 던진 3점슛은 깨끗하게 성공했고, 이 득점은 이번 대회 우승을 확정하는 결승점이 됐다. 대회 기간 중 3점 야투율은 52.9%. 

자국리그에서 30%대 초반의 3점 적중률을 보였던 미즈시마는 대표팀에서 더 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이번 일본 대표팀 12명은 물론 선발되지 않은 도카시키, 미유키, 쿠리하라, 모토카와를 다 포함해도 30살이 넘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일본 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24세.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1989년생인 다카다 마키와 요시다 아사미다. 여기에 내년이면 세계 4강을 달성한 U19세 대표들이 속속 성인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작년 이맘때 가드진의 줄부상으로 골머리를 앓던 신기성 신한은행 감독은 “가드들에게 어려운 걸 바라는 게 아닌데 기본적인 것을 자꾸 놓친다. 전지 훈련 때마다 만나는 일본팀들은 전부다 주전, 백업 가릴 것 없이 그걸 하고 있는데...”라며 답답해했다. 

지난 몇년간 더욱 공고해진 WJBL의 두터운 선수층은 일본 대표팀의 안정감있는 전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일본 대표팀에서 활약한 가나 출신의 귀화 선수 마우리 에브린

일본의 귀화정책
꾸준한 선수 육성과 더불어 일본이 전력 강화를 위해 진행한 것은 적극적인 귀화다. 남자 농구에서는 아직 가시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여자 농구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봤고, 이 부분은 더욱 일본의 강점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 혼혈 선수 귀화를 통해 대표팀 전력 강화를 노린 바 있다. 삼성생명의 김한별은 이번 아시아컵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농구 월드컵 티켓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만에서 일찌감치 귀화한 진안(KDB생명)도 꾸준히 성장하면 대표팀 선발 가능성이 있는 자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특히 농구에서의 귀화는 남자 농구의 혼혈 선수에게만 집중됐고, 그나마도 선수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 이루어졌다. 16세 이후 귀화 선수는 1명만 대표에 포함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인해 혼혈 귀화 선수를 충분히 활용 못하기도 했다.

여자농구에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표팀 전력 강화를 앞두고 앰버 해리스(전 삼성생명)의 귀화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바로 없던 일이 됐다. 아시안게임에는 귀화 선수가 뛸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한국계 혼혈’임을 주장했던 첼시 리가 귀화를 신청했다가 서류 조작이 발각됐다. 차라리 다행이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WKBL 최고 연봉자가 된 ‘가짜 한국인’에게 계속 속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첼시 리 사태로 말미암아 WKBL에서는 교포 선수(혼혈 포함)에 대한 출전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리 귀화 작업을 마친 김한별은 예외다. 

루마니아로 돌아간 김소니아(전 우리은행)가 WKBL 유턴을 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뀐 규정상 불가능할지, 아니면 제도 변경 전 이미 우리은행 소속이었기 때문에 인정을 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일본 U19대표팀의 중심이었던 마우리 스테파니

일본 대표팀을 노리는 마우리 자매
일본 여자농구 대표팀에는 흑인 선수가 있다. 가나 출신의 마우리 에브린이다.

에브린은 지난 2014년 오호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WJBL 아이신에 입단했다. 당시 아이신의 사령탑은 한국인 이옥자 감독.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왔던 아이신의 연습경기에서 에브린을 볼 수 있었다. 180cm의 에브린은 빅맨 치고 작은 신장이었지만 과감한 플레이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신과 연습경기를 가졌던 KB스타즈의 김수연(은퇴)은 “아직 어려서 자리 잡는 게 어설프다. 하지만 힘과 탄력이 확실히 다르다. 점프는 높이만 높은 게 아니라 최고점까지 올라가는 속도도 빠르고 공중에도 오래 머문다”며 “2-3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 빅맨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에브린은 인터뷰에서 “좋은 선수로 성장해 올림픽에서 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2016 런던 올림픽에 뛰고 싶냐는 질문에 “그때도 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20년 올림픽”이라고 일본어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일본인의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귀화가 논의됐던 여러 종목 벽안의 선수들이 지극히 정치적이고 비즈니스적이었던 것과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확실했다.

에브린은 일본 아이치현 도고에서 중학교를 졸업했고 학창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일찌감치 일본으로 귀화했기에 피부색 외에는 일본인으로서의 위화감이 없다. 

그는 일본농구선수로 살아가기 위한 정책적 일본인이 아니라 농구선수로 활약 중인 보통 일본인이다. 센터가 아닌 스몰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에브린은 이번 아시아컵에서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며 자신의 꿈에 한 발 다가섰다.

사실 에브린보다 일본 농구계가 더 주목한 것은 그의 동생인 마우리 스테파니였다. 이옥자 감독 역시 에브린보다 동생 스테파니를 더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언니인 에브린이 우리 팀에 있으니 동생도 나중에 오지 않겠냐”며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당시 일본 농구 관계자들은 스테파니의 경우 자금력에서 앞서는 JX나 도요타, 샹송 중 한 팀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올해 초 오호카고등학교를 졸업한 스테파니는 도요타와 계약했고, 오히려 언니인 에브린이 FA자격을 획득해 동생과 같은 팀인 도요타로 이적했다.

그리고 지난 달 29일, 마우리 에브린은 일본 국가대표로 아시아컵 정상에 올랐고, 다음날에는 스테파니 에브린이 일본 U19대표로 세계 4위에 올랐다. 스테파니는 이번 대회, 팀 내에서 최다 득점과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15년 아시아선수권 중국과의 경기에서 활약 중인 중국 출신의 일본 국가대표 오 아사코

양과 질에서 확실히 다른 혼혈과 귀화 선수
그런데 일본의 귀화 선수는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귀화 및 혼혈 선수가 WJBL에 10명이나 있다. 12개 팀 중 8개 팀이 이런 선수들 보유중이다. 마우리 자매를 데리고 있는 도요타와 챔피언 JX에는 이러한 선수가 2명이나 된다.

모든 선수들이 전부 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기야마 미유키(중국명 타파오, 전 샹송)처럼 적응에 실패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선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톈진 출신인 미쓰비시의 오 아사코는 이미 일본 대표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번 대표팀에는 탈락했지만 2013년부터 4년간 꾸준히 활약하며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 참가했고 아시아 2연패에 일조했다.

올해 JX가 선발한 우메자와 카데이샤 주나는 캐나다계 혼혈로 188cm의 장신이며 지난해 U18 대표로 활약한 바 있다. JX의 또 다른 혼혈 선수 나카무라 유니카는 청소년 시절 대표를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진 못하고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도카시키도 할아버지가 미국인이니 혼혈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JX는 혼혈 선수만 3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덴소에서 국가대표 다카다 마키의 짐을 덜어줘야 할 오코에 모니카 역시 흑인 혼혈로 올해 신인. 에브린을 놓친 아이신은 말리 출신의 코나테 카디쟈를 신인으로 선발했다. 

아이신과 마찬가지로 하위권에 머문 히타치, 하네다, 니가타에도 이러한 선수들이 있다. 히타치에는 가나계 혼혈로 2015년 유니버시아드 대표 출신인 눈이라 레미가 있고, 하네다에는 미국계 185cm의 센터 워싱턴 니시키가 있다. 니가타의 오오하마 안카도 이들과 같은 경우.

미국, 캐나다, 가나, 말리 출신의 선수들이 일본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16세 이전에 일본 국적을 획득해 전원이 함께 일본 대표로 선발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하위권 팀에 있는 선수들은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혼혈 및 귀화 선수들은 일본 농구계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예정이다. 여전히 16세 이전의 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중고 농구에서 피부색이 다른 선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학교들이 뛰어난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을 갖춘 외국인, 혹은 혼혈 선수들을 영입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신체 조건이 좋은 외국인을 조기 귀화시켜 육성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눈앞의 대회를 치르는 것만도 버거운 학교는 물론 농구 발전과 관련한 산적한 문제에 대해 예산 핑계만 대고 있는 대한민국농구협회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WKBL 구단들이 나설 수도 없다. 애써 발굴해 귀화시켜 봐야 우리 팀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신인 선발이 자유계약제인 일본과 달리 드래프트제이기 때문이다.

저변과 인프라, 이미 구축한 시스템의 우월성과 선수들의 기량, 여기에 적극적인 조기 귀화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여자농구의 전력이 지금보다 약해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사진, 영상 = fiba.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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