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직후 인터뷰 당시, 커리가 단상에 오르자 워리어스의 홈팬들은 "MVP! MVP!"를 연호했다. 이에 커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커리가 지닌 위상과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루키=이승기 기자]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나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29, 191cm)는 이번에도 파이널 MVP를 수상하는 데 실패했다.

워리어스는 13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오라클 아레나에서 열린 2017 파이널 5차전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129-120으로 제압하고 활짝 웃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기록한 골든스테이트는 대망의 우승 컵을 차지했다. 이는 구단 통산 다섯 번째(1947, 1956, 1975, 2015, 2017) 우승이기도 하다.

파이널 MVP 트로피는 평균 35.2점 8.4리바운드 5.4어시스트 1.0스틸 1.6블록 FG 55.6% 3점슛 47.4% FT 92.7%를 기록한 케빈 듀란트에게 돌아갔다. 

커리 또한 파이널 평균 26.8점 8.0리바운드 9.4어시스트 2.2스틸을 남겼지만 고배를 마셨다. 5차전에서 34점 6리바운드 10어시스트 3스틸 FG 50.0%의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동료 듀란트의 임팩트를 지우기에는 부족했다.

커리는 생애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2015 파이널 당시에도 파이널 MVP를 동료에게 양보해야 했다. 당시에는 안드레 이궈달라가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이처럼 커리는 두 차례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파이널 MVP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정규리그 2년 연속 MVP(2015, 2016)를 수상한 선수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리의 업적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커리는 이번 파이널 내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워리어스의 우승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 커리는 미끼를 던졌고, 넌 그것을 물어버린 것이여

클리블랜드는 올해 역시 '커리 죽이기'에 나섰다. 수비가 약한 커리를 집중공략해, 커리의 체력을 갉아먹는 작전을 활용한 것. 뿐만 아니라 커리에게 육탄전을 방불케하는 거친 몸싸움을 자주 걸었다. 커리를 최대한 지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시리즈 초반 커리는 들쭉날쭉한 슛 감각을 보였다. 이에 워리어스는 3차전 이후 커리 기용 방법을 바꾼다. 볼 핸들러 역할보다는 '오프-볼-무브'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커리를 슈터로 기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패착이었다. 플레이오프는 거친 몸싸움이 허용되는 무대다. 캐벌리어스 선수들은 커리를 잡고 밀고 당기고 때리는 등 커리가 쉽게 공을 잡지 못하게 했다. 이는 결국 활발하게 움직인 커리의 힘만 빼놓는 결과를 불러왔다. 실제로 커리는 3, 4차전에서 FG 37.5%에 그쳤고, 4차전에서는 고작 14점에 묶이기도 했다.

골든스테이트는 5차전에서 다시 커리에게 공을 쥐어줬다. 경기 초반 커리는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유도해냈고, 상대 빅맨을 바깥으로 끌어내며 쉬운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에 클리블랜드가 수비법을 바꿨다. 커리가 공을 잡으면 기습적인 헷지 디펜스, 사실상 더블팀 수비를 가하기로 한 것. 그러나 커리는 이를 역으로 활용했다. 멀찌감치서 더블팀이 들어오기를 기다린 뒤, 오픈 찬스를 맞은 동료에게 송곳 같은 패스를 전달했다. 이에 수비 로테이션이 꼬인 캐벌리어스는, 워리어스의 패스 워크에 번번이 당하며 득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이처럼 커리는 시리즈 내내 본인이 미끼가 되어 팀 공격을 살렸다. 오프-볼-무브로 수비를 유인하거나, 더블팀 수비를 기다린 뒤 빈 동료에게 패스를 찌르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동료들은 보다 나은 슛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기록보다 실제 공헌도가 더 높았다는 얘기다.

 

우승 직후 커리는 "안드레 이궈달라는 진정한 프로이자 희생할 줄 아는 베테랑"이라며 그를 치켜세웠지만, 어쩌면 워리어스에서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선수는 커리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커리는 새롭게 팀에 합류한 듀란트와의 조화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 언더아머 코리아

 

★ 이게 러셀 웨스트브룩이야, 스테픈 커리야?

커리는 원래부터 리바운드 가담이 좋은 선수다. 2015-16시즌 평균 5.4리바운드를 올렸고, 2016-17시즌에도 평균 4.5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냈다. 그런 그가 2017 파이널에서는 평균 8.0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한층 더 훌륭한 활약을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첫 번째는 트랜지션 오펜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워리어스는 속공을 중시하는 팀이다. 속공이 잘 안 됐던 4차전에서 패한 것만 보더라도, 이 팀의 승리를 위해 속공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팀 전술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커리가 수비 리바운드를 따낼 수 있게 배려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커리가 공을 잡은 뒤 바로 속공을 전개하기 위함이다. 빅맨으로부터 공을 넘겨받는 과정 없이, 커리가 바로 뛰어나가면 그만큼 공격 전개를 위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상대 수비가 자리를 잡기 전에 깨부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은 최근 NBA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러셀 웨스트브룩, 휴스턴 로케츠의 제임스 하든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는 커리 본인의 의지다. 커리는 본인의 수비 약점을 리바운드로 만회하려 했던 것 같다. 그는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격 리바운드에 참여했다. 3차전에서는 무려 5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기도 했다. 시리즈 평균 2.2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 결과, 커리는 시리즈 평균 8.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양 팀 선수들 중 최단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룬 쾌거이기에, 그 가치는 더 높다. 심지어 2, 3차전에서는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따내기도 했다. 이러한 커리의 열정과 노력은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 커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위에서 설명했듯, 커리는 공수 양쪽에서 모두 보이는 것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파이널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공헌도까지 깎아내릴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NBA 역사에서 커리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정규리그 MVP 2회, 우승 2회, 3점슛 역대 1위만으로도 이미 역대 포인트가드 중 5위권에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 현재까지 이룬 업적은 1980년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이끌어던 레전드 아이재아 토마스와 비슷하다.

우승 횟수, 정규리그 성적, 수상 내역만 놓고 보면 오스카 로버트슨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로버트슨이 지닌 상징성 등을 넘으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매직 존슨은 아직 '넘사벽'이니 언급하지 않겠다.

커리는 현대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첨병이다. 아직 최전성기를 누리는 중이기도 하다. 워리어스 또한 당분간 우승후보로 군림할 것이다. 향후 우승 여부와 활약도, 누적 기록에 따라 커리의 위상은 얼마든지 더 상승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편, 커리는 2016-17시즌 평균 25.3점 4.5리바운드 6.6어시스트 FG 46.8% 3점슛 41.1%(4.1개) FT 89.8%를, 2017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28.1점 6.2리바운드 6.7어시스트 FG 48.4% 3점슛 41.9%(4.2개) FT 90.4%를 기록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코리아, 언더아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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